이장혁 여섯번째 다방투어 - 공연 후기 + 타자와의 접촉

**** 새로 쓰기 귀찮아서 이장혁 홈페이지(www.leejanghyuk.com) 에 올린 글을 그냥 그대로 갖다 붙입니다.

뜬금없이 제 직업이 뭔지를 먼저 밝힙니다.
서버 관리를 하고 있어요.
고작해야 만으로 2년 3개월째 접어 듭니다.
평화로울 때는 그처럼 늘어질 수가 없는 일이지만,
한 번 장애가 나면 사람 피폐하게 만드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.

지난주에 공식적으로 세 번의 장애와, 비공식적인 두 번의 장애와,
서버에 문제가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건 24시간 울리는 전화와,
주말 밤샘 작업 등등으로 심신이 말도 못하게 누더기가 된 상태였습니다.
고물상에 갖다 줘도 50원도 안 쳐줄 마음 상태였죠.

일단 회사에서 오늘 다방투어를 빌미삼아 칼퇴근을 했지만,
이건 뭐 하룻밤새 빙하기가 도래한다고 해도 믿을만큼 아침과는 공기가 안색을 싹 바꿨더군요.
직장도 상암동에 있는 관계로
심하게 일찍 <즐거운 북카페>를 찾아 버린 바람에 근처를 어슬렁 대고 컵라면을 하나 먹고
주섬주섬 여유롭게 들어갔는데, 어쩐지 무척이나 앞자리에만 자리가 남아 있었죠.
덕분에 장혁님의 측면 인상을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.
실제로 이번이 처음 보는 장혁님 공연이었는데,(그리고 실물도,)
역시나 동안이구나, 라거나,
미간의 주름이 심하게 걱정되는구나, 라거나,
좀 멍한 채로 그런 생각들을 했더랬습니다.

어느 이상으로 마음이 지치면 저는 감각이 마비되는 편입니다.
몸을 움직이는 것은 ~해야 한다, 라는 것에만 의존할 뿐,
즐겁다거나 슬프다거나 짜증난다거나 하는 온갖 감정들이 off 상태로 빠집니다.

이런 황량한 상태이다 보니,
막상 열일곱 곡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노래를,
그 것도 상당히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면서도,
거의 아무 것도 느끼지는 못 했습니다.

다만,
몸 자체가 거대한 심장 그 자체가 된 듯이 유독 뚜렷하게 느껴지는 스스로의 심장의 박동이나,
장혁님의 기타줄과 신경이 그대로 연결된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손과 머리,
그런 물리적인 감각만은 너무도 뚜렷해서,
좀 더 촉촉한 마음 상태에서 들을 수 있었다면, 하는 아쉬움만 가득했습니다.

게다가 싸인을 받으려고 일기장 대용으로 쓰는
A6 사이즈 스케치북과 컴퓨터용 수성 싸인펜까지 들고 가 놓고는,
싸인 요청은 커녕 인사도 못 하고 나왔네요.
이 죽일 놈의 낯가림-_-
삼 세번은 다방 투어를 찾아야 인사나마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.

비록 날씨는 무척 추웠지만,
봄 바람 같은 것이 느껴지는 공연이었습니다.
약간의 따스함, 약간의 마음의 떨림,
그리고 봄 공기 특유의 얼굴의 각질을 곤두세울 듯한 건조함,
그런 것들이요.

비로소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니 조금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.
간신히 물기가 도네요.
다음 다방투어도 기다릴게요.
좋은 공연, 감사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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